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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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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4) 프랑스 아키텐의 마스 다주네
작성자 홍사화 등록일 10.10.15 조회수 103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4) 프랑스 아키텐의 마스 다주네
출처 :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09월 14일
-2000년전 길 위에 펼쳐진 사상의 좌판-

길바닥에 즉흥적으로 펼쳐놓은 책들. 손님은 상자를 마음대로 뒤적이는 재미를 맛볼 뿐만 아니라 통째로 들고 갈때 더 유리하다는 점을 권하는 전시방식이다.

주말에 일하지 않는 택시… 모든 것이 엉망이다. 중요한 행사는 주말에 열어놓고 막상 주말에 대중교통은 운행하지 않는다. 택시를 부르는 전화는 부서지고 녹슬어 있었다. 마르망드역의 안쪽으로 들어가 역장에게 하소연했다. 다행히 친절한 역장이 일곱여덟 군데 일일이 전화한 끝에 희생적인 의용군을 찾아냈다. 결국 두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택시가 도착했다. 그렇게 택시로 반 시간쯤 옥수수밭과 밀밭의 풍경을 헤쳐 가며 도착한 곳이 마스 다주네 마을이다. 이곳 사람들은 마을을 독특한 ‘가스고뉴’ 사투리 억양으로 단순히 ‘마스다’라고 불렀다. 중세 연애시로 잘 알려진 음유시인의 본고장답게 귀를 간지럽히는 억양이다.

로마제국 시대인 기원전 50년경 푸블리우스 크라수스의 원정대가 발을 디딘 이 마을에는 네모난 자갈포도(鋪道)가 일부 옛날 그대로 남아 있다. 기록으로만 전하던 이런 역사적 사실은 1986년의 발굴을 통해서 더 확실해졌다. 그 2000년도 넘은 길바닥에 이른 아침부터 과일상자며 종이상자들이 하나 둘씩 놓이기 시작하면서 장이 선다. 개구쟁이들은 벌써부터 즐거운 괴성을 지르고 귀여운 표정으로 참견하는 척하다가 내뺀다. 또 다른 꼬마들은 자전거를 몰고 휑하니 골목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불쑥 나타나곤 했다. 도시 아이들에 비해 훨씬 천진했다.

광장을 둘러싼 집의 초록빛 베네치아 덧창도 차례로 활짝 열리고 처녀와 할머니가 물매에 기대놓은 화분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마을에 하나뿐인 카페 겸 식당 ‘샹플롱’의 주인 피에르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윙크와 미소로 정다움을 표하면서 오늘 하루 대목을 예감하는 듯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바로 옆에 화실을 갖고 있고, 식당 벽은 그의 작품이 주렁주렁 걸린 화랑이다. 가운데 벽은 아예 벽화로 처리했다.

수백년 묵은 목재가건물 아래 차려진 옥외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손님들.

생 뱅상 성당 앞의 광장 분수 주변으로 2층 높이가 넘는 시커먼 목재 건조물의 골조가 길바닥과 함께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1916년 1차대전 때 불타버린 성에서 뜯어낸 목재로 지은 가건물이다. 원래는 갖가지 지역 농산물을 거래했고, 주로 제분업자들이 집결하는 큰 장터였으나 전쟁 이후 쇠퇴하다가 1935년에는 완전히 폐장한 곳이다. 마을 인구는 1968년 혁명과 혼란기에 1000여명으로 대폭 줄어든 뒤 제자리 걸음이다. 이 목조건물이 갖는 상징성을 살리고 마을의 활기도 불어넣을 겸 아키텐 지방의 서적상과 아마추어가 함께 1년에 단 하루를 책마을로 선포하고 축제를 치르기로 했다. 이 1일 책마을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을 넘겼다. 서적상들은 주로 마을의 동쪽 보르도 지역과 서남쪽 툴루즈에 걸친 넓은 지역에서 책과 골동품을 들고 온다.

생 뱅상 성당 실내에 있는 책 읽는 천사상.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생 뱅상 성당은 마을의 아주 대단한 자랑거리이다. 기둥머리의 우화적인 조각상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성당 회랑에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십자고상’(十字苦像)이 걸려 있다. 이 화가가 한창 물오른 솜씨를 과시하기 시작하던 1631년에 그린 이 유화는 그의 초기 걸작으로 열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오직 이 그림만을 보려고 찾아오는 방문객도 연중 끊이지 않는다. 성당 실내 바닥과 벽을 잇는 주춧돌에 핀 곰팡이는 엷고 무른 잿빛 돌 틈에서 차라리 옥빛으로 반짝인다. 어렴풋이 창틈으로 새어드는 빛으로 은은하게 밝혀져 잠시 황홀한 감흥에 휩싸이곤 하는 한 쌍의 천사상은 책을 읽고 있었다. 날개를 맞댄 그 천사가 펼쳐든 책은 성경이겠지만, 아무튼 책마을을 찾아온 이방인이 무슨 일로 그렇게 멀리서 왔는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 같다.

이 광장에서 가론느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1000년 이상 사용해온 샘터 겸 빨래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강과 이어진 운하가 내려다보인다. 샘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알랭 페레와 그의 동반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장날에 맞춰 멀리 코냑에서 요트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남부 대운하의 크고 작은 173개 소읍 가운데 하나다. 페레는 코냑을 저장하는 술통의 명장으로 1987년 프랑스 최고의 장인에게 수여하는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그는 열심히 외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쾌활하게 책읽기의 비결을 들려주었다. 한때 불면에 시달리던 중년의 고비에 그는 탐정소설을 읽으며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탐정소설을 정탐하는 게걸스러운 독자가 되었다.

생 뱅상 성당 회랑에서 렘브란트의 걸작을 감상하는 관객.
장터의 모퉁이를 차지한 자크 콜롱비니 부부는 아장 시에서 왔다. 새벽부터 한 시간 남짓 차를 몰았다. 노부부는 은퇴 후에 이 일을 시작했다가 완전히 빠져들었다. 자기 집 텃밭에 붙은 창고는 항상 책이 가득 넘치는 진짜 도서관이라며 놀러오라고 했다. 노부부는 칠십 줄에 접어들었지만 이 일을 아주 즐기고 있다. 1년 내내 그럭저럭 모아두었다가 이날 가지고 나와 파는데 벌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책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노인은 연금생활자로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이 일을 시작한 뒤로 오늘을 기다리면서 책을 모으다보니 어디를 가나 많은 책이 눈에 띄고, 독서의 즐거움으로 내외의 화제도 풍부해졌으며, 여성 전기물을 탐독하면서 역사에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되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영감님은 이런 할머니의 말을 가로채면서 내외의 거리는 책 때문에 더 멀어졌노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할머니는 알렉산드로스 6세의 딸로 수많은 작가의 상상을 자극했던 미모의 루크레차라든가, 17세기 스웨덴의 여걸로 예술가 후견을 위한 기행을 일삼았던 크리스틴 여왕, 뛰어난 초상화가였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후견을 받았던 탓에 외면당했던 비제 르 브룅 부인 등 비운과 행운으로 파란만장했던 주인공들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노부부는 아마추어 애서가(愛書家)요, 수집가였다. 두 분은 고백록 특히 실패하거나 비난받은 사람의 통한의 고백록을 즐긴다고 했다.

영감님은 지난 세기 ‘저주받은 화가’라는 말을 유행시켰고 자신도 명예실추를 겪었던 짓궂은 평론가 귀스타브 코기오의 책과 1960년대 한창 잘 나가다가 뇌물 스캔들에 연루돼 자살기도 끝에 감옥에서 썩는 동안 건축계와 정·관계의 모든 비리를 털어놓었던 건축가 페르낭 푸이용의 회상록을 내밀었다. 공감할 만한 뜨끈뜨끈한 반성문이다. 우리 사회도 이런 책이 많이 나올 만한 환경 아닐까? 하지만 가톨릭처럼 고해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를 훌쩍 뛰어넘는 도가풍의 대범하고 초연한 분들의 기개가 높아서일까? 비슷한 혐의로 고역을 치르는 인사는 은하수처럼 하늘을 덮고 있지만 솔직한 반성문의 감동을 전해주는 용기있는 필자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듯싶다.

점심 때 모든 사람들이 노상에 상을 길게 맞물려 놓고 오리고기 조림으로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식당에서는 스페인 노동자들이 모처럼 모인 사람들 앞에서 벌겋게 달궈진 얼굴로 스탭을 뽐내며 어깨를 흔들었다. 음료수를 나르는 아가씨도 갈지자 걸음으로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흥을 돋웠다. 한쪽 창가에 기대앉은 영감은 ‘슈나우저’ 한 마리를 시종 삼아 곁을 지키게 하고 꽁초를 입에 문 채 멋진 독자의 이미지를 그려보였다.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은 계속 불어났다. 오전부터 내내 왔다 갔다 하면서 첩첩이 쌓인 전집류와 대형화판에 걸쳐놓은 지도를 뒤지는 신사들의 끈기도 대단했다. 커다란 개들을 끌고 좌판 사이를 누비는 부인들이 많았다. 한쪽 테이블에 생수통과 사탕을 마련해놓는 배려도 사람들의 발길을 오래 붙잡아 두는 데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길바닥에 펼쳐진 책상자 속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 쥘리에트 모리오가 지은 명성황후의 일대기 ‘운현궁’이 성큼 눈에 들었다. 책을 펼쳐놓은 라베일 조르주는 보르도 부둣가에서 왔다. 조르주는 서적상으로 평생을 살아온 진정한 프로였다. 그에게는 물건을 앞에 두고 아웅다웅하는 태도가 몸에 밴 도시인의 초조함 같은 것이 없다. 싸게 구해들인 만큼 너무 싸다고 느껴서 감히 깎을 엄두를 원천봉쇄하는 값을 붙여놓았다. 그는 이사하는 집이나 고물상을 전전하고 책과 더불어 유랑하며 사는 재미에 다른 볼일이나 욕심 없이 살아왔다. 다른 지역에서 서는 정기·부정기 시장을 찾아 돌아다니므로 연중 겨울 한 철을 제외하고는 늘 유랑생활이었다. 안정된 소시민적 생활에 익숙한 우리의 짐작으로는 결코 평탄한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이거면 되었지”라고 말하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녔다.

그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림을 찾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의 물건 가운데 18세기 중반의 작은 유화가 있었다. 먼지와 때가 잔뜩 엉겨붙고 균열이 갔으며 소반 위에 과자와 앵두 몇 송이를 그린 것이었다. 수준이 떨어지는 ‘바니타스’(정물화의 한 장르), 문자 그대로 ‘덧없는 그림’이다. 복원 처리한다면 가치는 상당할 물건이다. 그때 필자를 제치고 서둘러 그림을 차지한 여인은 보르도의 화랑에서 온 큐레이터였다. 그녀는 나를 제쳐서 의기양양하다는 몸짓으로 서둘러 그림을 안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독서삼매에 빠진 노인을 지키는 애견은 마을의 분위기를 함축하는 듯하다.
행상은 사실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 공포와 탄압기를 뚫고 새로운 사상의 책자를 몰래 유통시킨 주인공이다. 그 많던 출판사와 출판인이 모두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책이 늘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이런 서적상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도서관에 미리 알고 가서 옛날 책을 신청해 보는 것과 모르고 있다가 눈앞에서 발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범이나 늑대가 지키는 길목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토끼처럼 그들은 통념과 어긋나고 심지어 불순한 ‘다른 생각’이 담긴 인쇄물을 세상에 퍼트렸다. 보따리장수나 엿장수처럼 좌판을 목에 걸고 호객을 하던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판자에 새겨진 단색화로만 보아왔다. 그런데 휘황한 원색과 보석을 박은 제단화의 뚜껑에도 천사는 늘 단색조로 그려지곤 하지 않았던가. 천사와 행상은 어차피 심부름꾼인데 하늘의 말씀을 전하든, 사람의 자유로운 사상을 전하든 흑백사진처럼 조촐한 색조로 재현되었다.

책과 더불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택한 그들은 분명 책의 수호신이다. 큰욕심 없이 그저 노잣돈이 된다면 어디고 기꺼이 달려가 귀한 소식을 전할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며 다가올 때 나는 쾨쾨한 냄새에도, 그 책장이 천사장의 날갯짓이려니 하면서 멍하니 주시했다. 마침내 날이 저물고, 그들이 삼삼오오 털털대는 차를 몰고 모두 떠나버릴 때까지 시커먼 대들보 밑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도 남과 북이 매년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장터를 벌일 수 없을까 생각했다. 어느덧 낯선 방언이 되어버린 서로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날이 왔으면 하는 생각에 저녁은 더 스산하게 다가왔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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