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이 태어난 당시는 우리 나라가 일본과 불평등한 병자 수호조약을 맺인 해다. 또 나라 안으로는 불합리한 신분 제도로 양반들은 부배하고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젊은 시절에 사람은 양반, 상민 할 것 없이 모두 평등하다고 생각하여 동학 의병 활동에 뜻을 두기도 하였다. 1905년, 결국 나라의 통치권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김구 선생은 온 힘을 다해 독립 운동을 하였다. 일본 경찰에게 쫓기면서 김구 선생은 27년 동안이나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립과 합께 국토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김구 선생은 다시 한 번 나라의 통일을 위해 싸워야 했다. 서로 다른 이념으로 갈라진 동포들을 한 마음으로 모으기 위해 설득하고, 북쪽의 지도자들과 협상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끝내 남과 북에는 따로따로 정부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렇게 김구 선생은 한평생 우리 나라의 독립과 남북 통일을 위해 애쓰다가 세상을 떠났다.(백범 일지)에 보면 김구 선생의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오늘날 우리 나라는 50년 넘게 분단 국가인 채로 통일을 위한 노력을 기울리고 있다. 한결같이 통일을 바랐던 김구 선생의 진실한 마음처럼 우리가 그 뜻을 이어 간다면 마침내 하나가 된 국토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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