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은 1914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재배하던 시기에 평안북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 이태영은 학교 웅변대회에 나가 "나는 딸이에요. 아들을 낳으면 동네에서 다 기뻐하는데, 딸을 낳으면 엄마들이 섭섭하다고 울어요. 딸이 더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말이에요."라고 발표하여 박수를 받았다. 이태영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야부지게 말할 줄 아는 아이였다. 이태영은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이 감옥에 가자 누비이불을 만들어 팔면서 살림을 꾸려 나갔다. 누비이불을 만들 때는 녹이 슨 가위 때문에 엄지손가락을 다쳤다. 감옥에서 나온 정일형(남편) 은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이태영에게 가위를 하나씩 사 왔다. 이태영이 겪은 고생을 평생 잊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선물이었다고 한다. 정일형이 국회 의원 후보로 나갈 때 남편을 돕기위해 이태영도 연설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라며 무시했다. 그러자 이태영은 기죽지 않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게 아니라 알을 낳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변호사가 된 이태영은 숨죽이며 살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가족법 개정 운동, 모금 운동 등을 했다.이러한 노력으로 1976년 여성 백인 회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시대가 양성평등하지 못했음에도 불과하고 자신의 입장을 잘 말하고 남의 입장을 해아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태영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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