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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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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를 읽고 (4-2반 김태희 )
작성자 고옥희 등록일 17.06.26 조회수 71

김구는  1876년 7월11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김순영과 어머니 외아들로  태어났다.

김구가 17세가되었을 때 과거시험을 보았지만 실패했다. 1894년에는  동학 농만

운동이 일어났다. 팔봉 접주로  해주성을 공격했으나 실패 하고 말았다.

치하포의 객주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였다. 그로인해 감옥에 투옥 되었다.

인천감옥옥에서 동망쳐 나와 호남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로 3 년후 김구가  26 세가 될때 김구의 아버지 김순영은 세상을 떠났다.

그로 최준례와 결혼을 하고 양산 학교 교사를 지냈다. 김구는 35 세에 서울 양기탁의 집에서

열린 신민회 회의에 참가하였고 1 년이 지나 안명극 사건에 관련되어 체포되고 징역 17 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 감옥에 다시 갇혔다. 37 세에 당시 창수였던 김구는 이름을 김구로 바꾸었다.

가출옥으로 석방되고 아내가 선생으로 있는 안신학교로 갔다.  동상평 농장에서 농촌 계몽 활동을

했다. 3--1 일 운동이 일어난 뒤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의 경무 국장이 되었다.

1924년  1월 1일 김구가 49세가 된 그날 김구의 아내 최준례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구에게는 거의 남은 게 없는거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2 년이 지나 임시정부의

 국무령세 취임하였고 한인 애국단을 조직 하였다. 53세에 한국 독립당을 조직하였다.

5년이 지나 이봉창이 일본 천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윤봉길에게

폭탄을 주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장군 등을 살해하게 하였다.

65세에 곽낙원이 세상을 떠나고 65세에 임시정부 국무 회의주석이 되었다.

미국대통령 루스벨트에게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였고 장제스와 만나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였다. 70세에 반대운동을 벌이고 73 세에 삼천만 동포에게 눈물로써 고함이란

성명을 발표했다. 김구는 74세 안두희의 총탄을 맞아 세상을 떠났다.

감옥에 갇히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단을 조직하고 반대운동을

하고 죽었다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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