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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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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2-1 이준호
작성자 이준호 등록일 13.06.18 조회수 74
강감찬은 948년 금주(현재의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삼한 벽산 공신 강궁진의 아들로 태어났다.강감찬은 세 살이 될 쯤 강감찬의 어머니 안방 마님은 심한 병의 걸려서 그 아무 의원도 안방 마님의 병을 고칠 수 없었다. 근데 안방 마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 때 강감찬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강감찬은 문제가 생겼다. 마을 아이들이 강감찬을 작은 키과 못생 긴 얼굴로 놀림을 받았다.그래도 강감찬은 열심히 공부를 배웠다. 983년 강감찬은 청년이 되고 임헌 복시에서 갑과 장원으로 급제했다. 993년 거란 1차 침입이 일어났다. 거란은 80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1차로  침략한 것이다. 강감찬은 10여년 동안 여러 고을을 돌면서 백성들을 돌보아서 임금이 강감찬을 종6품 예비성 승을 명하였다. 994년 강동 6주 개척 1009년 강조가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이왕위에 올랐다. 1010년 거란이 2차 침입을 했다. 1011년 정6품 예부 시랑으로 근무하여 왕을 몽진시켰다. 그리고 정3품 한림원 학사 승지로 임명되었다. 1012년 동북면 행영 병마사로 임명됬다. 1014년 종2품 중추원사로 임명됬다. 1016년 정3품 이부 상서로 임명됬다. 1018년 정2품 내사 시랑 평장사 겸 서경 유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11월에 거란이 3차 침입이 시작되었다. 1019년 서북면 행영 도통사 상원수로 임명되었다. 귀주 대첩으로 거란군을 섬멸하였다. 1020년 관직을 사퇴하고 물러나 <낙도 교거집> 과<구선집>을 쓰었다. 1030년 종1품 문화 시중에 임명되었다. 1031년 84세를 일기로 강감찬이 세상을 떠났다. 덕종이 `인헌공' 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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